지상만가
리뷰
개봉일: 1997년 2월 22일
감독: 김희철
각본: 강제규
연출:
김희철
장르: 로맨스, 멜로, 드라마
제작사: 씨네텍
상영시간:
90분 (또는 91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신현준: 광수 역
- 이병헌: 종만 역
- 정선경: 세희 역
- 최학락: 장현 역
- 김일우: 호프집 주인 역
오래된 서랍을 열다가 낡은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형이 건네주었던 음악이 담긴 테이프였는데, 투박한 녹음 상태 너머로 간신히 드러나는 열정이 있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음악이 형이 세상을 견디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지상만가"를 보면서 어렴풋이 그 시절의 형과 우리 가족이 떠올랐다.
이 작품은 가족사의 비극과 형의 죽음을 겪은 광수(신현준)가 음악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러나 우연한 사건 탓에 광수는 살인범으로 몰린다. 마치 내가 겪었던 한 시절처럼, 계획 없이 세상에 내던져져서 무엇도 할 수 없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광수에게 음악이 그렇듯, 내게도 한때 낡은 기타가 유일한 탈출구였던 시절이 있었다.
광수 앞에 종만(이병헌)이 나타난다. 그는 술집 종업원으로 지내지만, 무명배우였던 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 헐리우드를 꿈꾸는 이상주의자다. 고등학교 졸업 후 무작정 해외로 나갔던 내 사촌 형이 생각난다. “잘될 거야”라는 말만 남기고 가족의 걱정을 뒤로 한 채 떠났던 형은, 종만처럼 현실을 외면한다기보다 어떻게든 꿈을 붙들고 싶어 했다. 종만도 광수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그와 함께 영화를 만들겠다는 무모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다.
광수가 만나는 또 다른 인물, 세희(정선경)는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음대 휴학생이다. 그녀는 광수가 안고 있는 절망과 재능을 직감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그를 돕기 시작한다. 예전에 내 동생이 한때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들어가 있었는데, 가족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던 시절이었다. 동생이 홀로 연습실에 남아 피아노를 치며 위안을 삼던 모습이 세희와 겹쳤다.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줬다면 동생의 삶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영화의 제목인 "지상만가"는 절망적 배경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보여준다. 누구도 완벽하게 구원받지 못하고, 때론 순수한 의지가 어그러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서로에게 다가가고, 그 미약한 위로가 살아가는 힘이 된다. 마치 가족이 한때 함께 모여 채소밭을 가꾸던 장면이 떠오른다. 날씨가 고르지 않아 작물들이 시들어가도, 우린 매일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었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희망이라도 붙드는 것만으로 버틸 수 있었다.
이 영화는 9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뇌와 연대의 순간을 담고 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입에 오르내리는 게 아닐까 싶다. 세상이 냉혹하다는 걸 알고도, 사람들은 여전히 작은 불씨 같은 희망을 끌어안으려 노력한다. 이 작품이 주는 울림은 그 지점에 있다.
어쩌면 "지상만가"는 인생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고 주저앉은 이들에게 보내는 작은 응원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언젠가 이런 순간을 겪었고, 앞으로도 겪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순간마다 누군가는 종만처럼 손을 내밀고, 세희처럼 마음을 보태며, 광수처럼 음악을 붙잡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자꾸만 무너져도 다시 일어선다. 한 편의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이토록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이슈 및 관객 반응
이슈
- 흥행 실패: 《지상만가》는 1997년에 개봉했지만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이로 인해 감독인 강제규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심지어 집을 잃기도 했습니다.
- 강제규 감독의 경력 위기: 이 영화의 실패로 인해 강제규 감독은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는 이전 작품인 《은행나무 침대》로 큰 성공을 거둔 후 《지상만가》의 실패를 겪었고, 이후 《쉬리》로 다시 재기에 성공하게 됩니다.
- 이병헌의 역할: 이병헌은 이 영화에서 할리우드에 진출해 오스카상을 수상할 꿈에 젖은 몽상가 청년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는 흥미롭게도 이병헌의 실제 미래와 연관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관객 반응
- 이병우의 음악: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호평을 받았습니다.
- 배우들의 연기: 신현준, 이병헌, 정선경 등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이 인정받았습니다.
- 촬영과 음악: 영화는 촬영과 음악에 공을 들인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 흥행 실패: 영화는 서울 관객 33,587명을 동원하며 상업적으로 실패했습니다.
- 스토리 전개의 미흡: 앙상한 서사와 황당한 결말로 평가받았습니다.
- 감독의 연출력 부족: 조잡하고 어색한 구성으로 비판받았습니다.
- 캐릭터 설정의 얄팍함: 극단적이고 자기도취적인 인물 설정으로 몰입하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과도한 모방: 왕가위, 타란티노 풍의 스타일을 어설프게 모방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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