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

리뷰

개봉일: 1995년 9월 30일
감독: 구임서
각본: 현남석, 구임서
연출: 구임서
장르: 코메디, 드라마
제작사: 예영프로덕션
상영시간: 96분
등급: 15세 관람가

  • 이병헌: 이종두 역
  • 최진실: 김주영 역
  • 최종원: 황달수 역
  • 김일우: 호프집 주인 역
  • 권병길: 파출소장 역
  • 조선묵: 강소장 역

1995년 가을, 열 살이던 나는 어른들이 왜 저렇게 살까 싶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 4학년을 시작한 꼬마에게 회사원이란 매일 아침 서류 가방 들고, 넥타이 매고 출근하는 멋진 모습으로 비쳤으니까. 그런 순진한 착각을 산산이 깨버린 게 이 영화였다. TV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병헌의 지친 얼굴. 잊을 수가 없다.

김종두, 그저 평범한 이름을 가진 주인공. 작가를 꿈꿨지만 현실 앞에서 꿈을 접고, 여자친구를 따라 어쩌다 보니 제약회사에 취직한 남자. 종두가 걸친 헐렁한 양복, 거기에 빳빳하게 세운 옷깃은 왠지 숨 막혀 보였다. 마치 본인이 원하지 않는 삶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처럼.

영화는 코미디였지만, 웃음 끝엔 항상 쓴맛이 남았다. 영업 실적 압박에 시달리며, '웃음'이라는 가면 뒤에서 속이 곪아가는 직장인들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웃으면서 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종두의 모습이 2020년대 한국의 직장인들과 뭐가 다를까 싶다. KPI라는 이름으로 계속 바뀌는 목표, 성과를 내지 못하면 가차 없이 밀려나는 현실. 시대는 변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생존을 위한 투쟁은 똑같구나 싶었다.

영화 속에서 종두는 결국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총을 든다. 관객석에선 웃음이 터졌지만, 그 속엔 어쩔 수 없는 씁쓸함이 함께 묻어있었다. 웃으면서도 '혹시 나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 두려움이 밀려왔던 기억. 꿈을 꾸다가 지쳐, 현실과 타협하고, 결국 그 현실에 눌려 폭발하는 모습이 과연 남의 일일 뿐일까.

영화를 보면서 이병헌의 얼굴이 자꾸 내 친구들과 오버랩됐다. 대학 졸업 후,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회사원이 된 친구들. 사회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면서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어'라고 위로하는 모습에서 종두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최진실이 연기한 주영 역시 타협하며 살아가는 또 다른 우리의 얼굴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감독 김성수는 90년대 특유의 풍경을 날카롭게 잡아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차갑고도 어두운 뒷골목들, 허름한 사무실, 술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넋두리들. 그가 잡아낸 모습은 한국사회가 품고 있는 스트레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건 결국 우리가 아니라, 이 사회의 병적인 구조라는 것.

20대에 다시 보았을 때 이 영화가 왜 그렇게 불편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웃음을 가장한 풍자는 당시 우리의 삶을 아주 정확하게 저격하고 있었으니까. 지금도 유튜브나 OTT를 통해 과거 작품들이 새로 주목받는 시대인데,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진다. 직장인들이 부당함을 호소하며 거리로 나오는 지금, 종두의 모습이 더 이상 웃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우리는 영화 속에서 진짜 우리 모습을 발견하고 불편함을 느낀다.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가 정확히 그런 영화였다. 나도, 너도, 어쩌면 우리 모두가 영화 속 김종두처럼 미치기 일보 직전이란 사실을 깨닫는 순간의 쓴웃음. 그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이었다. 그리고 그 불편한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용기일지도 모른다.

이슈 및 관객 반응

이슈

  1. 혹독한 연출자의 평가: 영화 촬영 중 이병헌은 연출자로부터 심한 혹평을 받았습니다. 첫 촬영을 마친 후, 전 스태프가 보는 가운데 "이 작품은 내 데뷔작이자 은퇴작이다"라는 말을 복창하도록 지시받았습니다.
  2. 지속적인 비판: 촬영 기간 내내 연출자는 이병헌의 연기를 못한다며 심한 비판을 계속했습니다. 이는 이병헌에게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3. 연기 매진의 계기: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독설과 수모는 이병헌으로 하여금 연기에 더욱 매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향후 연기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4. 흥행 실패: 영화는 개봉 후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이는 이병헌의 초기 영화 경력에 어려움을 주었고,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내리막의 연속"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관객 반응

  1. 이병헌의 연기력: 이 영화로 이병헌은 제6회 춘사영화제와 제34회 대종상영화제에서 각각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의 연기력이 일정 수준 인정받았음을 의미합니다.
  2. 신선한 소재: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흔치 않았던 코미디와 드라마의 결합으로,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았습니다.
  3. 흥행 실패: 영화는 개봉 후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이는 관객들의 반응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4. 작품성 논란: 이병헌의 필모그래피에서 "내리막의 연속"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작품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습니다.
  5. 연기 논란: 촬영 당시 연출자로부터 "연기를 못한다"는 혹평을 받았다는 점에서, 일부 관객들도 이병헌의 연기에 대해 비판적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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